토종민들레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노란 꽃과 흰 꽃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꽃 색깔이 아니라, 꽃받침이 위를 향하여 꽃을 감싸 안고 있으면 토종민들레다. 그렇지 않고 꽃받침이 아래를 향하면 서양민들레다. 요즘 흔하게 보이는 민들레는 토종이 아니다. 가장 흔한 것은 노란 꽃이 피는 붉은씨서양민들레고, 토종민들레 중에서 노란 꽃은 거의 보이지 않고, 흰 꽃으로 밭이나 과수원 등에서 보인다. 노란 꽃의 토종민들레는 서양민들레에게 밀려난 것이다.
서양민들레 중에서도 붉은씨서양민들레가 도시형으로 열악한 환경도 잘 견딘다. 더구나 서양민들레는 밤에는 꽃잎을 닫고 자가수분을 하며 여러 날 꽃을 피워 번식도 잘한다. 서양 민들레 종류는 전 세계적으로 1,500여 종이나 된다. 그러나 토종 민들레 꽃은 하루 만에 시들어버리고, 바람보다 곤충을 매개하여 꽃가루받이하는 타가수분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서양민들레가 토종민들레보다 우수한 품종인가? 그래서 토종민들레를 몰아내고 자신의 씨앗을 널리 퍼트려 일본열도를 넘어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가? 다윈이 진화론에서 말한 생존경쟁을 통한 ‘자연도태’, ‘적자생존’의 예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인가?
다윈은 생존경쟁을 통해 열등한 개체는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우월한 개체만이 살아남아 진화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모든 상황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며 결국 그렇게 되고 만다는 필연법칙이 아니고, 특정 환경에서 특정 생물이 가장 잘 적응한다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곧 이곳에서 살아남은 생물이 모든 곳에서도 다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그곳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는 다른 종류의 생물이 살아남아 진화하는 것이다. 어떤 한 품종은 모든 곳이 아니라, 그저 특정한 어떤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적합하도록 진화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은 허버트 스펜서 등이 왜곡하여 사회학에 이식하여 사회진화론으로 변형한다. 이들은 적자생존을 통해 유능한 유전자가 살아남고 천재는 유전되며, 사회의 진화를 통해 야만사회와 문명사회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세계 침략을 옹호하고, 히틀러의 인종청소를 합리적이라고 치장해주었다. 또한 사회진화론은 자연도태를 악용하여 사회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된다.
그러나 다윈이 말한 진화는 끝없이 발전하는 일직선의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지만, 끝없이 가지를 치고 뻗어 나가는 나무의 확산과 같은 다양성의 과정이다. 민들레도 그렇다. 붉은씨서양민들레가 모든 곳에서 생존하는 우수한 품종이 아니다. 해양성 기후 지역인 일본 열도는 붉은씨서양민들레가 매우 희귀한 편이다. 붉은씨서양민들레를 우리가 잘 볼 수 있는 것은 기후환경적으로 한반도가 메마른 대륙성 기후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 한반도에서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도시형인 붉은씨서양민들레의 분포가 더욱 확산되었다.
100년 전에는 한반도에 토종민들레만 살았다면, 시간과 공간의 변화로 이제 여러 종류의 민들레가 각기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민들레는 차가운 대륙의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살아가기 위해 가지를 뻗지 않고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고, 그 뿌리에서 잎을 피워 납작 엎드린 자세를 취한다. 봄부터 여름까지 쉬지 않고 계속 꽃을 피우고 깊은 땅속의 뿌리가 남아있는 한 계속해서 살아가는 다년생 초본종으로 진화했다. 우열을 가리지 않고 민들레의 고유한 방식으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