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되어보신 적 있으세요?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습니다. 가까이는 부모와 형제, 자녀에 의해 자기 존재를 인정받아야 살 수 있지요. 가족으로부터 모르는 사람 취급받으면 같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직장은 돈만 벌러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삶 중 반절 이상을 보내야 하는 곳이 직장이지요. 직장 상사나 동료, 후배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지키고자 많은 노력을 합니다.
인정욕구는 갈증이나 배고픔과 같은 인간 생존의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욕구입니다. ‘예쁘다’고 말해준 밥알에서 핀 곰팡이는, ‘죽어라’고 말한 밥알에서보다 더 보기 좋고 아름다운 색깔로 피어납니다. 듣고 보지도 못하는 곰팡이조차 자기를 인정하는 말의 기운을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찌 사람을 고립시키고 배제할 수 있나요? 이는 사망선고 이상의 처벌이자 폭력입니다.
인정욕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처절한 굴욕감을 안기는 방법이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입니다. 광양제철소 협력업체인 이지테크라는 회사는 대법원에서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아 복직한 사람, 고 양우권씨를 투명인간 취급했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해고됐다가 복직한 것도 서러운데, 돌아와 보니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2평짜리 방에 덜렁 책상 하나였습니다. 그것도 CCTV로 감시당하는 상태였습니다.
노조를 탈퇴하지 않는다고 직무를 강제로 변경시켜버리고, 노조 조끼 입었다고 감봉에 대기발령시키는 회사였답니다. 그런 회사에서 CCTV로 무엇하는지 감시하면서 어떤 일감도 주지 않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은 ̒사표 내고 나가라. 니가 죽든 말든 회사는 상관없다.̓는 뜻이 아닌가요? 그런 멸시와 모욕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아닙니다. 무려 1년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투명인간 취급받으면 어느 누가 살맛이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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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양우권씨가 찍은 자신의 책상 | 2014년 10월 3일 그는 호소했습니다. “130일째 멍청하게 앉아있다.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고 업무지시도 내리지 않는다. 나와는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책상에 업무용 컴퓨터가 있지만 인터넷 등은 할 수 없어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보고 있다.”
개인의 건강은 사회 구조와 분리되어있지 않습니다. 노동자를 기업의 상대로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노조의 첫째 요구사항이지요. 그런데 회사는 노조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노조 설립 이후 고 양우권씨는 수년간 우울증과 수면장애로 고통받았고, 이의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개인도 인정하지 않고, 노조도 인정하지 않았던 이지테크는 생존의 기본을 파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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