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건강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한 면만 있는 동전이 없듯이 건강만 있는 몸은 없다. 태어난 후 몸이 겪는 전체 과정에 아픔은 꼭 붙어있다. 그 아픔을 낫게 하는 치료법은 단 하나뿐일까?
한의학을 배우기 전까지는 딱 하나의 옳은 방법이 있다고 믿었다. 물론 의학적 발전 수준이라는 현실적 한계로 인한 제약이 있겠지만,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명과 인체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그 최선의 방법이 하나가 아닐 수 있으며, 그것이 당황할 일이 아니라 고마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생명은 정지된 물체이거나 분해하여 부속품을 바꾸고 조립하면 다시 복구되는 기계가 아니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하게 관계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질병의 치료 방법은 단 한 가지가 아니고 다양한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방법이 미흡할 때는 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고, 그래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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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운 바다 |
또, 이전에는 최선의 방법은 100% 옳은 것이고, 나머지 방법은 100% 틀린 것이다고 믿었다. 그러나 최선의 방법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한계는 작지 않았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이룩된 최선의 방법이지만, 항상 오류의 가능성을 그 안에 갖고 있다. 의도와 결과가 항상 일치하지 않듯이, 최선의 방법을 사용한 치료의 효과가 매우 좋은 경우도 있지만 악화하는 경우도 생긴다. 효과에 버금가게 그에 따른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거듭된 시행 착오를 통해 어떤 질병에는 한 가지의 치료법이 최고라는 생각은 허물어졌다. 나아가 세상의 많은 문제도 일률적인 해결책을 찾기도 힘들지만, 설령 있다 하더라도 직선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다고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열린 마음을 가지려 애쓴다.
이것이 정치권력과 행정권력을 가진 분에게 특히 필요한 마음 자세다. 더구나 교육에서는 두 말이 필요 없다. 파시즘 시대도 아니고, 제국주의 시절도 아닌데 국가가 인정한 역사만을 배우라니, 이건 지나가던 새도 웃겠다. 문학, 역사, 철학을 일컬어 인문학이라 한다. 아무리 돈이 안 된다고 시궁창에 던져버리는 인문학이라 해도 ‘이게 정답이다’하고 냅다 외우게 하면 안 된다. 정답이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 내가 틀렸을 수도 있음을 아는 겸손한 자세, 아무리 상대의 말이 옹색하더라도 그 속에서 진리 하나는 발견하는 자세가 인문학을 하는 데는 진정 필요하다. 더구나 삶의 총체로서의 역사임에랴! 예전에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생각난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하는 거나 제대로 해라. 남 탓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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