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의 작은 꽃잎이 흔들린다. 채 차가운 바람이 잦아들지 않았다. 햇빛은 봄이로되 바람은 여전히 겨울이다. 어떤 이는 “꽃은 스트레스의 산물이다”고 했다. 나무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초봄에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더욱 그렇다. 뒤를 돌아보면 눈바람에 떨었던 겨울이고, 앞으로도 얼마나 매몰차게 차가운 밤을 견뎌야 할지 모른다. 자칫 한눈파는 사이에 얼어버릴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한시라도 빨리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런 절박함이 찬 바람과 매몰찬 밤에도 꽃을 피우게 한다.
무엇인들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랴!
위기의 순간에 보이는 빛은 더욱 밝고 따스하다. 절망의 끝에서 맛본 구제의 끈은 더욱 질기고 고맙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라고, 인간을 넘어선 기계의 승리라고, 사람의 창의성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능력이라고 말들 한다. 3연패 끝에 1승을 거둔 이세돌의 투혼에 기쁘면서도 안도의 깊은숨을 쉬었다. 5전 전패를 당하는 것이 아닐까 내심 불안했다. 인간중심의 세상을 조금은 삐딱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속으로는 정해놓았음에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나는 그렇게 위기의 순간에 승리를 거둔 이세돌을 응원했다. 절박함으로 그 승리는 더욱 찬연했다.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에 놀란다. 20년 안에 없어질 15개 직종의 일자리 수는 1,527,000에 이른단다. 없어질 직종이 단순 노동직이 아니라 사무직이라며, 성역 없는 일자리 감소에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근대 이후 노동환경은 급속하게 변화하였다. 앞으로는 그 변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변할 것이다. 이에 맞춰 삶의 환경이 변한다. 이제 몸 팔아 돈 얻는 ‘임노동’의 삶이 변해야 한다. 실은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 아니다. 기계를 소유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의 문제이다. 이는 결국 사람 사이의 권력의 문제 즉, 정치다. 그렇다면 저 멀리 있는 정부나 국회에서 해결해야만 하는가? 아니다.
송나라 어느 여승은 도를 깨달은 순간의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다.
종일 봄을 찾았어도
봄은 보지 못했네.
짚신 신고
산 머리 구름 위까지 가 보았지.
돌아올 때 우연히 매화 향기 맡으니
봄은 가지 위에 벌써 와 있었네.
그녀는 봄 즉, 도를 찾기 위해 온 산을 헤매었다. 산 구석구석, 구름 위 정상까지 가보았으나 봄을 찾지 못했다. 허탈하여 포기하고 지쳐 집에 돌아오니 매화 향기가 스쳐오고, 거기에서 도를 얻었다. 봄은 저 먼 산 위에 있지 않다. 바로 내 옆 지천에 깔린 파르르 떨고 있는 매화 꽃잎에 와 있다. 우리의 희망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